특집 얼굴 있는 거래, 공정무역

1. 가치를 품은 희망의 거래

글·윤정숙

내가 공정무역으로 거래되는 물건을 처음 접한 것은 십 년 전 영국에서였다. 유학 시절 자주 들렀던 학교 근처 옥스팜 가게의 재활용물건들 사이 한 모퉁이에 진열된 커피, 설탕과 수공예품들은 내겐 신기한 구경거리였다. 한참 뒤에야 나는 그 물건들은 자유시장경제의 틈바구니에서 견실하게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공정무역의 생생한 증거라는 것을 알았다. 공정무역은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와 남-북반 국가 간의 불평등한 권력관계의 결과들이 가져온 ‘부정의와 빈곤화’에 맞서 변화를 꿈꾸는 지구촌 시민들의 대안적 저항이다. 공정무역은 기존생산, 유통과 소비 방식과는 아주 다른 발상과 시스템을 통해서 새로운 경제 질서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처음 공정무역의 시작은 아주 적은 사람들에 의한 기미조차 느낄 수 없이 작고 조용한 시도였다. 그러나 이제 공정무역은 ‘인간의 얼굴’을 한 무역의 대명사로 불리면서 세계경제의 지도 위에 자신의 영토를 만들어가기 시작하고 있다.

인정사정 없는 폭주기관차
공정무역은 신자유주의 경제 원리에 대한 근원적 성찰이다. 신자유주의 경제원리는 거대자본의 자유로운 투자와 무역이 장벽 없이 움직이도록 날개를 달아주며, 그 자본은 이윤을 쫓아 무제한 이동하면서 세계시장을 누비고 있다. 돈벌이에 필요하다면 주저 없이 무슨 일도 가능하다. 사람들의 일할 권리와 생존, 자연 자원의 막개발, 아동노동착취도 마다하지 않는다. 이윤을 위한 수단에는 이윤 자체를 제외하고는 어느 것도 고려하지 않는다. 공정무역은 ‘인정사정 없이’ 이윤을 찾아 냉혹하게 질주하는 신자유주의 경제철학과 무역구조에 근원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과 자연의 가치를 조금도 성찰하지 않는 그 ‘자유’의 결과가 어떠한지, 빈곤과 착취를 담보로 하는 불공정한 무역이 얼마나 지속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공정무역 생산과 교역의 전 과정은 인간에 대한 존중과 가치를 중심에 둔다. 신자유주의가 추구하는 최고 효율과 경쟁의 경제시스템은 수많은 사람들을 그 트랙에서 떠밀어낸다. 원주민, 가난한 나라의 농민들과 어민들이 가진 기술과 생산물들은 거대자본들이 주도하는 경제질서에서는 쓸모없거나 효율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들의 기술은 뛰어나지만 수공예품이나 수를 놓는 옷처럼 한꺼번에 많이 만들어낼 수는 없다. 커피나 새우처럼 많은 수확을 해도 적당한 시장을 찾지 못하거나 다단계 유통구조 때문에 결국은 아주 헐값으로 넘긴다. 좋은 기술을 가지고 많은 수확을 하며 또한 성실하게 노동을 하지만 그들의 생활을 나아지지 않는다. 불평등 세계 무역구조의 횡포는 이들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생존조차 어려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게 한다.
그러나 그들이 만든 생산품이 ‘시장’으로 진입해 ‘공정한 가격’으로 팔리며, 공급을 안정시키는 소비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자립이 가능하다. 지역 전통과 문화가 만들어낸 고유의 농산물과 수공예품, 의약품 등이 상품화되고 그것이 공정한 무역으로 거래된다면 그들은 스스로 생활하고,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자신들의 공동체문화도 지켜가면서 행복해질 수 있다. 공정무역은 이들과 함께 한다. 신자유주의 경제 밖에 서 있는 사람들, 기술은 있지만 부가가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사람들, 생산은 하지만 소득으로 연결하지 못하는 사람들, 거래는 하지만 불평등한 거래를 강요받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거래가 공정무역이다.
공정무역은 신자유주의 세계경제 밖에 사는 사람들이 계속 생산하고 자립이 가능한 대안적 생산과 소비구조를 개척해 간다. 이러한 거래는 사람들 사이의 국경과 인종을 넘어선 연대와 배려의 가치가 없이는 불가능하다. 연대하는 마음은 내가 사는 물건을 누가 만들었는가, 어떤 노동조건에서 만들어졌는가. 그것이 얼마의 가격에 거래되는가에 주목한다. 그들은 생산자의 생활과 생존방식 그리고 그들이 사는 지역공동체 회복에 관심이 있다. 이들을 기억하는 ‘깨어있는’ 소비는 빈곤과 실업으로 황폐해진 그들의 고용과 소득이 안정화되는데 필요한 다양한 거래와 수요창출에 관심을 갖는다.

원조가 아니라 떳떳한 연대
사람들이 무역에 ‘공정성’의 가치와 철학을 담아내는 실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것은 불과 20여 년 전이다. “원조는 필요 없어요. 정당한 가격으로 우리 커피를 구입하기만 하면 원조 없이도 우리는 스스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라는 멕시코 커피생산농민의 말은 유럽 공정무역의 대명사가 된 막스 하벨라르 브랜드를 성공으로 이끄는 영감을 주었다. 유럽에서 시작된 공정무역은 일본 생협을 중심으로 ‘대안무역’ ‘민중교역’으로 확장되어 필리핀의 바나나와 설탕, 인도의 면화로 만든 옷들은 십여 년 동안 꾸준히 거래되고 있다.
소수의 이상주의자들의 천진하고도 무모한 발상 정도로 외면당했던 ‘사람중심의 경제’ 만들기는 유럽에서 시작해 꾸준히 세계로 확산되어 가고 있다. 생산자, 무역업자, 판매상 등은 각각 전 세계 네트워크를 만들어 교류하면서 공정하고 투명한 ‘대안무역의 세계화’를 시도하고 있다. 거대한 세계자유경제시장의 틈바구니에서 작게 시작한 공정무역이지만, 21세기 들어서면서 그 판매액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북미지역을 대상으로 한 보고서에 따르면 2003년과 2004년에는 전년보다 공정무역거래액이 각각 52퍼센트와 30퍼센트로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출판된 한 보고서 역시 전 세계 공정무역 거래의 60~70퍼센트를 차지하는 25개 유럽 국가들의 매출액은 지난 몇 년간 해마다 평균 20퍼센트씩 꾸준한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고 말한다. 공정무역 농산물을 재배하는 전 세계 농민은 80만 명에 이르며, 스위스 사람들이 먹는 바나나의 절반, 그들이 사는 꽃의 삼분의 일, 영국 사람들이 마시는 차의 5퍼센트는 공정무역거래 상품이다.

이들은 2천 8백 개의 유럽 내 특화된 전문 가게를 통해 혹은 5만 개가 넘는 슈퍼마켓의 특설 판매장에서 팔리고 있다. 이제 공정무역은 지구시민들의 어엿한 ‘운동’이 되었다. 그 운동에 기꺼이 동참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공정무역은 점점 많은 사람들에게 생활의 가치이자 소비유형으로 녹아들고 있다. 공정무역은 시장경제 원리를 거부하거나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시장의 기본 원리에 따르면서 공급과 수요를 만들어가고, 거래와 무역의 규칙을 새롭게 만들어 간다. 그 새로운 지점이 바로 가난한 사람들, 환경 그리고 지역공동체를 살리는 것이다.

당신의 쇼핑이 세상을 바꾼다
공정무역은 물건을 만드는 사람과 사는 사람, 거래하는 사람들 사이의 소통이다. 인간과 환경중심 가치에 공감하면서 공정한 상호거래를 통해 대화, 투명성, 상호존중의 관계를 갖는다. 무엇보다 북반부 소비자들이 공정무역에 대한 인식이 높아지는 것은 주목할 일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경우 절반 이상의 소비자들이 공정무역 상품을 알고 있다. ‘깨어있는 소비자’들의 윤리적 소비행위, 어쩌면 이것이 공정무역의 존속을 가능케 하는 가장 중요한 전제일지 모른다.
소비자들은 그들이 사는 제품에 응축된 도덕 가치와 생산과정에 점점 더 큰 관심을 가지며, 그 가치는 구매 행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유럽과 일본의 공정무역 소비자들에게 ‘당신의 쇼핑이 세상을 바꿉니다’는 아주 익숙한 슬로건이다. 소비자들은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입는 물건들이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매체가 세뇌하는 상품정보들, 앉아서 설득당하는 대상이었던 소비자들의 구매행위가 변화하고 있다. 소비에서 ‘다른 선택’의 기회가 있음을 알게 될 때 그들은 다른 물건을 선택한다. 공정무역 제품을 사는 것으로도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대단히 매력적이고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패트리셔 애버딘은 저서 ‘메가 트렌드 2010’에서 7가지 유행 가운데 하나로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자’의 등장을 꼽는다. 자신들의 가치와 라이프스타일 충족시켜 주는 제품을 선호하는 소비자들이 늘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소비자들은 생산자들이 자신의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게 만듦으로써 깨어있는 제품의 공급은 늘어나고 가격은 낮아질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들은 소비행위에 있어 윤리와 환경을 생각하고, 공정한 상품가격과 임금지불의 원칙들, 환경을 고려한 생산과정, 건전한 노동조건들, 소규모 생산자들에 대한 기술적 재정적 지원, 아동노동금지, 그리고 생산자들의 문화존중 같은 가치를 담은 제품들이 소비자들의 공감을 얻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소비자들이 ‘불매’로 저항했다면, 이제 그들은 ‘적극적 선택’을 통해 생산과 소비의 흐름에 영향을 준다. ‘인권, 환경문제를 배려하면서 비즈니스가 성립하는 것을 증명하겠다’는 경영철학으로 일본에서 공정무역 의류업을 성공시킨 소피아 미니는 기업의 건강한 비즈니스가 인간과 환경중심의 가치와 갈등하지 않음을 말해준다. 결국 공정무역이 하나의 대안 경제로 자리 잡기 위한 조건은 생산자, 소비자, 그리고 공정무역가들의 성공적 소통과 인간존중의 가치에 공감하는 것에 있다. 이러한 소통이 성공하면, 자유무역시장에서 받는 커피가격보다 공정무역커피가 비싸더라도 그들은 기꺼이 웃돈을 지불하고도 그 상품을 구매할 것이다.

가치를 구매하는 희망의 거래, 공정무역
공정무역은 변화를 꿈꾸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대안적 실천이자, ‘희망의 거래’이다. 수요와 공급의 경제법칙에 인간의 ‘가치’를 작동시키는 무역이 가능함을 보여 준다. 공정무역은 생산과 소비, 무역과 거래의 전 과정에 윤리와 보실핌의 가치를 생각한다. 소비자와 무역업자가 누가 생산하는가, 어떻게 생산하는가. 무엇을 구매하는가. 왜 그 상품을 구매해야 하는가를 늘 생각하게 한다. 무역업자들은 가난한 생산자들의 기술향상에 관심을 가지며, 필요하면 선불로 생산비를 지급하며, 상품에 가격을 매길 때 생산자들과 협상한다. 진열된 제품 옆에는 그 물건을 만든 사람의 이름과 사진, 물건을 만든 과정을 생산자의 사진과 나란히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공정무역이 가치를 중심에 둔 새로운 모델의 생산과 교역방식이지만, 가치와 함께 ‘좋은 물건’의 생산이 시장경제에서 공정무역을 지속 가능케 하는 절대 조건이다. 가치지향의 구매를 하는 소비자가 늘었지만, 당연하게 그들은 좋은 제품과 좋은 가치를 함께 충족시키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일상에서 날마다 커피를 마시고 옷을 고를 때 공정무역 물건을 통해 자신이 공감하는 ‘가치를 구매하는’ 것이다. 공정무역은 결국 사람들 사이의 윤리적 소통이다. 새로운 생산과 소비, 거래방식으로 인간중심의 경제를 일상에서 배운다. 한편 삶의 무의식에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는 신자유경제의 부정의하고 비정한  얼굴의 실체를 감지하게 될 것이다. 공정무역은 인간의 가치를 담은 상품을 통해 상호존중의 소통 관계를 맺으며, 그 거래의 관계망 속의 모든 사람들을 ‘깨어있게’ 한다.
공정무역이 신자유주의 주류경제에 대한 유일한 대안이라 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새로운 무역을 통해 원조가 아닌 방식으로 빈곤과 환경을 해결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안정적인 일과 소득을 보장해 주고, 인간의 얼굴을 한 생산과 소비가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여기에는 냉혹한 주류경제의 패러다임이 각성하고 성찰해야 한다. 인간과 자연의 가치를 먼저 생각하는 경제구조를 모색해야 한다는 것, 세계경제의 바깥으로 몰려난 사람들의 지속가능한 생존방식에 대한 근본적 해결의 절박하다는 것,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계경제의 차가운 물줄기를 바꾸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일깨워 준다.

*윤정숙 님은 아름다운재단 상임이사로 있다. 그이는 오랫동안 여성민우회를 통해서 여성운동의 발전을 위해 헌신했다. 그이는 공정무역이 우리나라에서 느리지만 견고하게 뿌리내리기를 희망하고 있다.